"팀장님 커피 한잔 하실까요..." 급작스레 낸 휴가에서 돌아온 아침 8시...팀장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여느때처럼 일 이야기를 할 것이라 예상한 팀장은, 사무적인 얼굴로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다.
'34년동안 참 잘 버티신 저분... 나는 당신처럼 살지못하겠어요.' 가벼운 업무 이야기부터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는 아주 객관적인 사이...
"팀장님. 저 퇴직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생각치도 못했던 이야기에 팀장은 말문이 막힌다. "왜? 이야기 좀 들어보자."
작년부터 왔었던 번아웃과, 업무에서 오는 개인의 아노미현상에 대하여 설명했다. 워낙 업무에 있어 강한분이라, 씨가 안먹히는 변명이다. "니가 지금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받아 지금 생각이 한쪽으로만 몰아가서 그렇다. 니가 마음을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여전히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그분. 하지만 나는 이것의 결말이 무언지 알기에, 원래 내 마음의 소리를 이야기했다.
. 회사를 다니는 의미를 모르겠다. 내가 돈을 위해서 회사를 다닌다면, 난 이미 돈은 혼자살 만큼 충분히 모아뒀다. 돈을 물려줄 자식도 없는데, 회사를 다니며 돈을 모으는게 삶의 의미인것인가? 회사를 다닌다고해도 과연 노후를 대비할만큼 충분히 돈을 모으고있나?
. 나도 회사에서 가슴뛰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관심있어하는 분야와 내 업무가 접목될때. 그때 회사를 다니는것이 너무 재미있었고, 가슴뛰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가슴뛰지못하는 순간이다. 회사에서 일하는게 흥미가 없고 숨을쉬는게 너무 괴롭다.
. 내 재능을 회사에서 살리기에는 너무 괴리가 있다. 팀장님도 인지하듯, 내 재능을 이 회사에서 살리기에는 너무 나와 결이맞지 않는다. 마치, 전문 요리사는 용도에 따라 칼을 달리 사용한다. 회를 썰기위한 칼이 있고, 채소를 써는 칼이있고, 육고기를 써는 칼이 있는데, 지금 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계속 회를 써는 칼로 육고기를 썰고 있는건 아닌지....라는 용도에 맞지않는 재능을 쓰며 시간을 허비하는듯한 느낌을 지울수 없다.
. 내가 잘하고 내가 관심있는 분야를 위하여 나는 퇴직을 하고 그것을 준비하고 싶다.
점점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에 팀장님은 빠져들기 시작하고, 점점 내 이야기에 동조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나를 설득하려하다 점점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기시작하고. 자신의 젊은시절의 이야기와, 지금 골칫덩이라고 고민하고있는 딸의 미래에 내 이야기를 접목하며,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팀장은 내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 박사과정으로 대립하고 있는 딸의 상황을 , 사회생활에 넌덜머리가 난, 내가 고민하고있는 내용에 대입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나는 팀장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다.
팀장과는 9월 말까지 일하기로 합의하였고, 인수인계 및 업무정리는 그 이전에 완료하기로 이야기했다. 8월 말 경 팀원들에게 이야기하기로 했고, 그동안 고민하던, 숙제처럼 안아왔던 팀장과의 퇴직면담은 1시간 30분만에 종료되었다.
이후 내 답답했던 속은 개비스콘을 먹은듯 편안해졌고, 이후 업무에서 오는 번뇌와 욕심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것을 다시한 번 깨닫게 해 주었고, 남은 90일을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소소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